'예술의 종언'과 미학적 일상 이후의 삶과 예술(가)-곽영빈 2018


1. 작가의 초기작인 <예술가처럼 보이게 만들기>(2008)는 일반인 참가자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소위 '예술가'의 모습을 스스로 연기해 보게 하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컨셉의 작업이다. 이는 작가의 이후 몇몇 작업이 그러하듯 얼핏‘참여예술’, 혹은 '관계미학'의 형태로 가시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오랜 탐색을- 어떤 의미에선 시대착오적으로-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기원'이 그러하듯, 그것의 운명은 그 자신이 아니라 후속 작업들에 의해 사후적으로 수정 또는 정교화되고 (재)규정되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나중에 (되돌아) 온다. 그러한 '사후의 시점'에서 볼 때 이 작업은 어떻게 보일까? 이 질문은 안민욱 작업의 중핵이 시각적인 것이라기보다 바로 이러한 '시간적 시점'이라는 의미에서 결정적이다.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안민욱의 작업은 예술이 보편화된, 혹은 예술과 삶을 결합시키려 했던 아방가르드의기획이 어느새 생각보다 시시하고 평범하게 완료된 '(미래)완료시제'의 시점에서, 삶과 예술(가)의 존재 방식을 탐문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단언은 단순해보이지만, 사실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 이는 그것이 무엇보다‘시간‘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즉, 어떤‘이후’가 문제라면, 시간적으로 그 이후에 작업 중인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들도 모두 그‘이후’에 속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그러한 구분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이 자리는 이러한 질문들의 무게에 걸 맞는 논의를 펼칠만한 곳은 아니다. 이러한 시공간적 제한을 염두에 둘 때 일단 출발점 으 로 삼기에 유용한 것은 , ‘ 미 학 화(aesthetization)’라는 프로젝트는 이제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그것은‘디자인’과‘예술’의 미학화로 구분된다는 그로이스의 제안이다. 그로이스에 따르면, 일상에 대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미학화 프로젝트는 이미 완성되었다. ‘실질적으로 완수되지 않은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상식적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는 여전히 굳건한데, 그것은 그러한 아방가르드 프로젝트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세상을 바꾼다’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한 일상, 즉 삶의‘미학화’는 세상을 바꾸거나 최소한 개선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전제. 이것을 그는‘예술’(의 미학화 기획)과 구분해‘디자인의 미학화’라 부르는데- 정확히 30년 전인 1988년 출간된 자신의 출세작에서 그가 도발적으로 묘파했듯- 그 20세기적 범례로 스탈린이라는‘총체 예술가’가 인민을 재료로 역사의 전시장에 발표한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을 두고 있다는 건 자명하다.

물론 그는 이후의 과정 전부를 세공하진 않지만, 그것이 프레드릭 제임슨이“포스트모던 감각의 새로운 삶”이라 이름 붙인 지각 혹은 경험 양태의 전지구적 창궐, 즉 이미지의 포화를 통해 가속화된 미적경험의 편재화와 함께 실질적으로나 잠재적으로 미학화된 일상에 다다른 후, 니콜라 부리오에 의해 한 시대를 (과거 시제로) 풍미한 이른바‘관계미학’, 즉 이러한 (자본주의적) 미학화 과정과 더불어 내파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회(성), 즉 관계 자체를- 일시적으로나마- 만들어내는 것으로 예술을 (재)정의하는 기획들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안민욱의 작업은 바로 이 시점에 스스로를 인위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육화한다. 즉 '성취의 우울(melancholy of success)'도, 카톡 메시지도, 하다못해 DM도 없이 이미 도래해버린 '예술의 종언이후'의 시점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때 삶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일 수있는가?


3. 안민욱에게 이러한‘종언’의 감각은 어떤 맥 빠진 완료, 또는 지루한 충만과 잉여의 감각으로 체현되는데, 그것은 예를 들어 지금은 '은퇴'해 시간이 남아도는 미술가- 그의 이름은 무려 '반 고흐'다-와 카페에서 나누는 가상의 담소(<아르스 카페>, 2012)나, 부족하기는커녕 넘치는 빛, 그리하여 차양막을 필요로 하거나 조도의 감소를 요구하는 빛- 혹은 그것의 부재-의 알레고리를 통해 매개되기도 하고 (<어둠은 잠시, 도>, <차양막>), 난지도 캠핑장 옆에 세운 컨테이너 안에서만 작동하는 와이파이와 에어컨 바람처럼, 정작 그것이 놓인 해당 장소에는 잉여적이거나 별 쓸모없는 요소를 제공하는 형태(<아르스 쓸모 없는 예술 사무소>, 2014), 혹은 전시장 천장 위와 지붕 사이에 죽어 있던 공간에 공기를 순환시키고 빛을 쏘되, 정작 그렇게 드러난 공간을 사용하지는 않는 방식(<플랜 비 스테이지>, 2016)으로 변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한국과 영국 사이에서 작가의 수공업적인 매개를 통해 이뤄지는 물물교환(<교환er>, 2009), 일반영어 학원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아르스 영어예술학교>(2014), 한국 나이트클럽의 '부킹' 형식을 차용한 파티인 <알스비안 나이트>(2016)와 같은 작업들은, 삶과 예술 사이의 상호교환, 혹은 자리바꿈의 작업이 매끈해 거의 구분이 불가능해진 지점을 효과적으로, 다시 말해 후줄근하게 가시화한다.


4. 실지로 <알스비안 나이트>에서 웨이터 역할을 수행한 작가는 종종 '작가'로서 인지되지 않았는데, 이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도슨트 역할을 떠맡았던 작가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퍼포먼스(1989)나, 참여자들에게 국수를 떠주던 티라바니자의 '관계미학' 작업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 강조했듯 이러한 혼동과 해석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다른 작업들과의 관계 속에 놓일 때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커먼 바>와 <카페 넌지>, 그리고 <오픈 스튜디오>이다. 먼저 <커먼 바>는 2018년 4월, 서울 상암동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흘간 열린 12기 난지 아트쇼 <쇼!룸!>에 그가 애너 한 작가와 함께 만든 공간으로, 일반 관람객들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작가들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만든 곳이다. “난지에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작가들이“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기여하기 위해“바”처럼 만들어진 이 공간은‘카페 넌지(Cafe Nunji)’와도 연동하는 작업인데, 그가 박경률, 염지희, 조경재 작가와 함께 스튜디오 2층의 죽은 공간이자 자신의 방 바로 앞 외부 공간에 조성한 이 곳 역시 기본적으로 입주 작가들을 위한 곳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공간들의 독특한 위상이다. ‘예술과 일상’이라는 (시대착오적) 이분법을 들이댈 때, 이 자리들은 하나 같이 애매하다. 이곳은‘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공간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예술이나‘작업’의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예술과 배타적으로 구분되는‘일상’의 공간 또한 아니다. 이곳은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라는, 아티스트들이 매년, 그것도 한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이며, 모든 작가들이 매일 매일의‘일상’을 전적으로 사는 곳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오픈스튜디오’를 위해 그가 만든 <오픈스튜디오> 역시 이러한 독특한 시공간의 특정성을 적절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주로 현장에서 설치를 하는 성향의 작업들이 많아 특별히 보여줄 작업이 없”었다는 변명(?)과,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오픈스튜디오의 특성을 인스타그램과 중첩시켜, 그는 레지던시 생활에 사용하는 책상, 의자, 및 책과 같은 물건들을 정사각형으로 만들려 했는데, 높은 천장과 좁은 폭을 특징으로 하는 스튜디오의 구조 덕분에 이는 결국 85×250×254.4(cm)의 육중한 직사각형 구조물로 귀결되었다. 예를 들어 ‘이 작업이 (어떻게) 예술작품인가?‘라는 질문은, 이 작품을 구성하는 물건들이 귀속되고, 작품이 전시된‘레지던시’라는 물질적, 행정적 공간이‘예술’에 속하는가 아니면‘일상’에 속하는가라는, 투박하고 시대착오적인 질문이 실질적으로 전치된 것인데, 우리가 앞에서 지적했듯 안민욱은‘‘예술’과‘일상’을 접목시킨다‘는 식의 접근이 전제하는 분리‘이후’의 시간 감각을‘미술창작센터’라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직조함으로써 스스로를 명확하게 분리해낸다.

소재는 다르지만, <마스터 베이비>(2017) 역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작업이다. 군부대가 많은 강원도 홍천에 머물게 된 작가가, 10여 년 전 역시 군인 신분이었던 자신을 떠올리고“우연히 부대 주변에서 들린 미술관에서 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바램으로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한 마디로 군인들이 자위를 할 수 있게 만든 1인용 부스다. 핑크색으로 변색된 군복의 위장 패턴은 언뜻 이용백 작가의 <엔젤 솔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반짝이는 LED로 부스 밖에서 찬연히 빛나는 <MASTER BABY>라는 제목, 혹은 광고판과, 부스 안에 설치된 섬세하게 구비된 의자와 휴지통, 물티슈와 루브리컨트용 젤 등의 자위용 물품들을 통해 순식간에 증발한다.

얼핏 짓궂어 보이기도 하고, 요즘처럼 젠더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면화된 시점에서 보면 일찍이 이브 세즈윅이 남성들끼리의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이라 비판했던 것의 연장선상에 놓인 내부자 농담(inside joke)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작업의 중핵은 그런 피상적 차원과는 거의 무관하다. 이 작업의 관건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과 유사한 시공간적 예외성의 물질화 차원에 있다. 분홍색으로, 그것도 찬란한 LED조명과 함께 덩그러니 서있는 이 부스는 수다스런 광고판이나 다름없는데, 그 안에 들어가 조명을 키면 밖에서 ‘ENGAGED'라는 표시까지 켜져 자위라는 내밀한 행위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부스가 타겟으로, 혹은 위로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사실, 즉 20여개 월 남짓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혹은 (끊임없이) 다른 이들로 대체되는 ‘한시적 존재’라는 점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1년마다 대체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속 아티스트들과의 공명은 물론,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오픈스튜디오> 작업과의 유사성을 더욱 내재적인 것으로 만든다. 즉 공개되다 못해 노골적으로까지 여겨지는 이 기이한 사적 공간은, 소위 일반인들의‘일상’과 유리된 채 전적으로 사적이지도, 전적으로 공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예술적이지도 전적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생활이 한동안 이어지는‘레지던시’라는 한시적 공간의 짝패인 것이다.


5. 안민욱의 다른 작업들 역시, 이러한‘시점’도는‘시차’의 문제설정을 전제로 놓고 보아야만 그 위상이 훨씬 명확해 진다.

예를 들어 유학 후 귀국한 작가가, 키우던 개의 낙후된 개집을 개조한 <바우 하우스 Bow House-초롱이의 집>(2015)을 보자. 이는 물론 독일의 ‘바우하우스 Bauhaus’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제목이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유머- 개와‘bow’의 조합은 bowwow, 즉 ‘개(짖는)소리’를 상기 시킨다-가 웅변하듯, 그들의 기획을‘시대착오적’으로 지속하려는 의지와는 무관해 보인다.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현실개선’이라는 그들의 예술적 이상이 이미 완료되었기 때문인데, 이를 작가는 ‘인간적 현실’이 아닌‘개의 현실 개선’이라는 차원으로 전치시키고, 그것을 다시‘개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혹은 그의‘동의’나‘확인’을 구한다-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차원에서 구현함으로써‘바우하우스’의 유토피아적 기획을 우스꽝스럽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공간적이면서 때론 시간적인‘전치’, 혹은 (시대/범주)착오의 감각은 <윔블던의 개와 유모차>(2013)처럼, 어른을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나, 실제 강아지를 필요 없게 만드는 아이패드 화면을 장착한 애완동물 모형 갤러리에 놓인 작업실 용 이동식 선반(<D.I.Y>, 2015), 또는 실제 게임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낮게- 역시 갤러리에- 설치된 농구골대와 농구공(<참여-바구니-공>, 2017) 등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앞에서 살펴본 <카페 넌지>나 <난지넌지; 난해한지도>(2018년 8월)처럼 언어 영역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6.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작가의 최근작 중 하나인 <합의된 납치극>(2016)의 흥미로운 점은 그의 이전까지의 몇몇 작업을 다소 위태롭게 지지하고 있던 공동체성과 '관계미학'의 맹점, 즉 합의(consensus)와 공통감각에 근거한 공동체(sensus communis)라는 전제를 시각성의 차원에서 참가자들과‘함께 시험에 부친다(con-test)’는데서 찾아진다.

예를 들어 '합의' 하에 작업에 동행한 참여자들은 이후의 피드백에서 자동차가 불편했다거나 봉고차에 동승한 어시스턴트들의 불친절함을 지적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의되었던 것 아닌가? 그들은 '납치'에 '합의'하지 않았던가? 아니라면, 그들의 '합의'는 어디까지 동의되었던 것인가? 얼마만큼의 '편의'와 안락함이 이 이벤트를 말 그대로 '납치극'으로 만드는가?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이벤트 내내 안대를 해야 했다(blindfolded)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 작가의 다른 작업들이 때론 혼동을 불사하며 다가갔던 참여(participation)라는 '관계미학'의 나이브한 전제는 여기서 명시적으로 의문에 부쳐진다 . 즉 '이전까지 수동적이거나 제한적인 관객(spectator)에 불과했던 이들이 이 작업에는 '전적으로 참여했다(fully participated)''는 식의 묘사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관계미학’이 구성하는‘참여’의 환상을 역설적으로‘교환’과‘동의’를 통해 내파시킴으로써, 안민욱은 전자가 담당했던 예술적, 혹은 사회적 기능의 환상을 간지럼 태우다 못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커먼 바>나 <카페 넌지>, <마스터 베이비>와같은 사례를 통해 강조했던 지점들, 다시 말해 그들이 여전히‘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는‘예술과 일상’의 문제, 또는‘관계미학’과‘공동체’라는 이슈들은 이 작업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민욱의 작업들은 예술과 일상의 접목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무의식적) 인식 위에 서며, 그렇게 김빠진‘일상의 미학화’, ‘미학화된 일상’이후의 일상과 예술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역사적 감각을 잉여와 쓸모없음이라는 벡터 속에서 육화한다. 특히 <홈리스의 도시>(2017) 전에 포함되었던, 말 그대로‘홈(Home)’이 제거된‘없는(-less)'이라는 의미를 투명한 계단, 벽 등으로 물질화 하는 <뭐 없는 것 네 가지>는, 쓸모없음과 잉여의 문제를 청년세대나 노동자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섣불리 ‘사회화’하지 않고, 오히려‘예술’이야말로 그렇게‘없는’존재가 되었다는, 즉‘일상과의 접목’이라는 예술의‘고향(Home)’과 같은 사명이 이미 완수되었다는 의미에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존재가 되었다‘는 역사적 인식을 수더분하게 형상화한다.

얼핏 맹맹해 보이는 안민욱의 작업들 앞에서, 순수한 예술의 외피를 게으르게 변주하는‘예술(적)’작품들이나, 예술과 일상을‘접목’시키려 여전히 애쓰는 고뇌의 포즈들은 성실한 소극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각자가 서있(다고 생각하)는 장소와 시간을 확인해두자. 혹시 모르니 (다시) 한 번 더.



곽영빈은 미술평론가로 미국 아이오와 대학 영화와 비교문학과에서「한국 비애극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의 멤버이자 리더로 노래와 작편곡을 병행, 일본의 아카펠라 그룹 '트라이톤', 재즈 싱어 게이코 리 등

과 협연했으며, 2015년 「수집가 혹은 세상의 큐레이터로서의 작가: 구동희론」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최초의 국공립

미술관 평론상인 제1회 SeMA-하나 비평상을 수상했다. 코넬 칼리지, 서울대, 홍익대, 한예종 미술원 등에서 발터 벤야민, 구로

사와 아키라와 버스터 키튼, 매체미학과 영상 및 현대사진이론에 대해 가르쳤고, 타마스 왈리츠키와 리쥐촨과 함께 2016 서울국

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심사위원을,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전과 제4회 포스코 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심사를 맡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현대미술과 오디오-비주얼 이미지, (디지털) 매체미학의 교차점을 성찰한다.



Life and art (artist) after “the end of art” and aesthetic daily life

 

                                                                                             Kwak, Young-bin

Art critic/Ph.D. in Film studies

 

 

1.   The artist’s earlier work A Project That Makes One Look Like an Artist (2008) is a seemingly simple conceptof work of having general participants to act out their definition of“ artists.”Similar to the artist’s few artworks afterwards, it looks like a “Participatory Art”or become visible in a form of“ Relational Aesthetics”or maintain a long avantgarde quest of “the border between life and art” in a somewhat anachronic way.

 

However, as it goes for all “origins,”the destiny gets modified or elaborated or (re)defined by later works, and in that sense, it comes (back) at the latest. From that “post-exhibition perspective,”what does this work mean? This question is important in a sense that the core of the work by Minwook AN is not something visible but“ the time point.”


2.   Simply put, AN’s work is an attempt of investigating the existence method of life and art (artist) from a “(future) perfect tense”time point, when the art is universalized or when the avantgarde plan of combining art and life is already shrewdly and plainly completed

 

This statement looks simple, but it actually presents complicated problems. That is because it touches the issue of “time.”In other words, if “post- “ is a problem, then do all the work of other artists done in the later time also fall into that “post- “ category? If not, then what is the standard of the classification? Unfortunately, this is not a place for discussion of those serious problems. Considering such time and spatial limitation, it is convenient start from Groys’suggestion that the project called “anesthetization”is not one but two and is classified as anesthetization“ design”and“ art.” According to Groys, the anesthetization project of avantgarde art on daily life is already completed. Despite of the logical opposition that “the substantially unfulfilled area still exists,”such proposition stands strong because the idea of “changing the world”in a broad sense is the basis of the avantgarde project. Daily life through art, in other words, the idea that “anesthetization”of life refers to changing or at least modifying the world and ultimately making the life abundant through this. He calls this “anesthetization of design”by separating it from (anesthetization plan of) “art,” as he provocatively tore down in his first work published exactly 30 years ago in 1988 and it is certain that an example of 20th century legend is the 20th century Soviet Union presented at the historical exhibition using the people by “whole artist”named Stalin. 

Of course, he does not craft the whole process afterwards, but it can be seen as a connection of plans that (re) define art by making -temporarily- the relationship itself, which is the society (sociability) that is imploded along with the (capitalist) anesthetization process, which is so-called“ relationship anesthetization” that once overruled a generation (in the past tense) by Nicolas Bourriaud after reaching the practically and potentially anesthetized daily life along with lateralization of an accelerated artistic experience through image saturation, which is the awareness or experience of global outbreak that was named as “new life of postmodern sensation”by Fredric Jameson.

AN’s work artificially located itself in this time point to raise the following questions. In other words, what is art in the time of “post-end of art”that has already come without “melancholy of success,”KakaoTalk messages, and even DMs? Or what can it be? And what is the life then? Or what can it be?

 

3.   An presents such sensation of “ end” as a disappointing completion or boring fulfillment and surplus sensation, and it has been variated into, for example, an imaginary conversation at a cafe with an artist who “retired”and has much time on his hand his name is Van Gogh”ars cafe (2012) or it is mediated by allegory of surplus light that requires shading net or a decrease of light intensity or the lack of such For A While, The Way into Darkness, 借養莫(Cha Yang Mak), a type that is surplus to the place it is placed in or provides unnecessary factors, like Wi-Fi and airconditioning that only work in the container built next to the Nanji camping site ars The Office of Useless Art (2014) or a type of circulating the air and lighting the dead space between the roof and ceiling of the exhibit and not using the space after all Plan B Stage ( 2016).

 

4.   In fact, the artist who took the role of waiter in arsviAn Night was often not recognized as an “artist,” and this looks similar to Andrea Fraser’s performance(1989) of acting Philadelphia art museum docent and the “anesthetization of relationship”work by Tiravanija, who distributed noodles to participants. However, as I emphasized earlier, this kind of confusion and interpretation appears to be “anachronistic”when it is pu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other works. What is the significant point that is Common Bar, Cafe Nunji, and Openstudio. First, Common Bar is a space he created with Anna Han at the 12th Nanji Art show <Show! Room!> that opened for 10 days at the SeMA NANJI RESIDENCY, Sangam-dong, Seoul in April 2018. He did not avoid having general audience, but it was specially designed to have “a good time with artists.”This space is related to “Cafe Nunji,”as it was made like a “bar”to help artists who “feel like they are isolated in Nanji”to have “a good time with fellow artists,”and the dead space of the 2nd floor of the studio, in the outdoor space right in front of his room with Artists PARK Kyung Ryul, YEOM Ji-hee, and KyoungJae CHO is also basically a space for renting artists. 

     The main idea is the special status of these spaces. When apply the (anachronistic) binary fission called “art and daily life,”these spaces all lose their stance. These are spaces for artists who make“ arts”but are not a space for general sense of art or “work.”However, at the same time, this is not a space of “daily life”that is classified exclusively from art. This is a space called SeMA NANJI RESIDENCY, where artists every year temporarily stay and is not where all artists fully spend their“ daily life”of every day. 

     At the same time, Openstudio that he made for “open studio”is a work that appropriately 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time and space. With an excuse that “he had not much to show since he mostly does work of on-site installation”and by combining the characteristic of the open studio in showing something with Instagram, he tried to make objects like desks, chairs, and books used in residency life as square, but because of the high ceiling and narrow width of the studio’s structure, the objects were made into big rectangular structure in the size of 85 x 250 x 254.4 (cm). For example, the question of “(how) is this an art work?”refers to rough and anachronistic question of does the physical and administrative space of “residency,”where objects are contained and the work is exhibited, belongs to “art”or “daily life,”and as we have pointed out previously, An clearly separates by weaving the time sensation of “post- “classification based on the approach of “combining “art”and “daily life””at a spatial level of “art creative center.”

     Materials are different, but Master Baby (2017) is also an interesting work in this sense. The artist who happened to stay in Hongcheon, Gangwondo, where there are many military bases, thought of himself who was also serving the military 10 years ago and made the art work with a wish that“ it would be nice if people who visited the art museum near the military base by chance saw the work.”This work is basically a 1-person booth for solders to masturbate. The pink military pattern looks like Angel Solder series by LEE Yongbaek, but the similarly instantly goes away through the shiny LED title or the advertisement board Master Baby outside the booth and the detailed masturbation products, such as chair, trashcan, wet tissue, and lubricant gel. It looks childish in a sense or from a point of view with the globalized gender problem, it looks like the inside joke extending from what Eve Sedgwick criticized of homosociality of males, but the core of this work is almost irrelevant from such superficial level. The main theme of this work is in the level of materialization of time and spatial exceptionality, similar to what we observed earlier. The pink booth with flamboyant LED lighting stands there like a shouting advertisement board, and once the light inside is on, the sign that says “ENGAGED”outside the booth turns on, which makes it impossible to do an intimate activity like masturbation. Moreover, this booth’s target or subject of consolation are Korean soldiers, who exist for 20 months and disappear or are “ temporary existence” that is (continuously) replaced by others, strengthens the similarly with the rectangular Openstudio work as well as the artists in the residency program who are replaced every year, as we have looked at earlier. In other words, this strange private space that is open and even explicit is a mate of the temporary space called “residency,”in which life that is not completely private or public or artistic or daily continues for a certain time period, separated from the so-called general public’s “daily life.”


5.   AN’s other works also come clear once they are seen with the basis of setting the problem of such“ time point” or“ time difference.” For example, let’s take a look at Bow House (2015) by an artist who came back home after studying abroad and renovated the old house of his dog. This is of course based on German “Bauhaus,”but as the humor that title discreetly presents the combination of dog and“ bow” is bowwow, meaning the “dog barking sound” shows, it seems irrelevant to the intention of “anachronically”maintaining the plan. This is because the artistic idealism of “reality improvement”is already completed, and the artist displaces this to a level of “the reality improvement for dog”instead of“ human reality” and takes a look at it from the “dog’s perspective again or asks for his “agreement”or “confirmation” which presents practically impossible utopia and makes the utopian plan of“ Bow House”an anachronical one. As such, the spatial and timely “transposition”or anachronical sensation transforms into an animal doll with an iPad that makes real dogs useless, a portable shelf for work located in the gallery D.I.Y (2015), or baskets and basketball installed too low in the gallery again for a real game Participation-Basket-Ball(2017) and sometimes melt into the language area like previously mentioned Cafe Nunji or <Could Be Me Could Be You, Sophisticated Map>(August 2018).

 

6.     In this sense, the interesting point of one of the artist’s recent works The Agreed-Kidnapping-Play (2016) is found in putting the consensus and common sensationbased sensus communis to“ con-test”with participants at a visual level, which is the blind spot of sensus communis and “relationship anesthetization”that was barely supporting the previously works. For example, the participants of this work under “consensus”pointed out the uncomfortable vehicle or unfriendliness of assistants in the feedback. However, was this not agreed upon? Did they not give a “consensus”for“ kidnapping?”If not, then how far does their “consensus”go to? How much “comfortability” and homey feeling make this even a “kidnapping incidence?”Through the simple fact that participants had to be blindfolded throughout the event, the naive proposition of “relationship anesthetization”called participation for which other works of the artist approached despite of confusion comes into question here. In other words, a description like “the people who were previously passive or limited spectators were fully participated in this work” is impossible. By paradoxically imploding this kind of idealism of “participation”that “relationship anesthetization” composes of through “exchange”and “consensus,”An teases the idealism of artistic or social function and even makes it uncomfortable. The parts are that we emphasized through cases of Common Bar, Cafe Nunji, and Master Baby, in other words, the problems of “art and daily life,”through which they look like they are still “participating”or the issues of “ relationship anesthetization” and “community”clearly appear to be anachronical with this work. AN’s works stand on the (unconscious) stance that art and daily life are already combined and the historical sensation of such disappointing “anesthetization of daily life”and what daily life and art after the “anesthetized daily life”are incarnated in the vector called surplus and useless. In particular, “Four things missing something”that materialize the meaning of “less”without “home”with clear stairs and walls included in <The City of Homeless>(2017) does not “socialize”the problem of useless and surplus as social phenomenon of young adult generation or workers but humbly pictures as a historical recognition that “art”has become such“ less”existence, meaning that the“ home”-like mission of art called “grafting into daily life”is already completed and has become “a transparent existence despite its existence.”

     In front of the plain-looking works by AN, the “art(works)”that lazily change the envelope of pure art or the contemplating poses of trying to“ graft”art and daily life are likely to appear as sincere farce. Therefore, let’s check the place and time that everyone (think they) are standing at. Let’s check one more time (again) just in case.



Kwak, Young-bin as an art critic, he received his doctorate in a thesis called “the Origin of Korean a sad drama”at the

department of Comparative Literature and Cinema of the University of Iowa, U.S. and as a member and

leader of the acapella group, he performed both songs and composition, along with Japanese acapella

group ‘Triaton,’jazz singer Keiko Lee and others and he won the 1st SeMA-Hana Criticism Award, the first

National Art Museum Review Award hosted by the Seoul Museum of Art for “a Collector or an Author as a

Curator of the world: KooDonghee’s theory.” In 2015 Also, he taught about Walter Benjamin, Kurosawa

Akira and Buster Keaton, media aesthetics, video and modern photography theories in Cornell Colleg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ngik University, and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 and along with Tam?s

Waliczky and Li Juchuan, he was a judge of the 2016 Seoul International Experiment Film Festival, and the

17th SongEun Art Awards in 2017 and the 4th POSCO Museum’s new artist contest. He is currently a

researcher at the Sungkyunkwan University’s Comparative Culture Research Institute, reflecting on the

intersection of contemporary art, audio-visual images and (digital) media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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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욱 작가는 주로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퍼포먼스의 장을 만들어 왔는데, 이는 관객의 최종적인 참여를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일종의 무대를 작가가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전시/설치 이후 관객이 그 속에 위치하고 나서야 무대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 역시 의미한다. 이는 아르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카페와 같은 빈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찾는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건축(설치)을 퍼포먼스의 장으로 변형시켰던 <아르스 카페>에서부터, 전시장을 하루 나이트클럽으로 바꾸어 이성 간의 즉석 만남을 주선하는 웨이터로 작가가 직접 변신한 <알스비안 나이트>까지 연장되고 있었다. (참고로 아르스는 2008년 작가가 예술가의 비고용 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세운 예술적 회사로, 이후 아르스 카페는 크게 보면, 관객의 참여를 발생시키는 장<아르스 영어 예술 학교>(2014, 영어로만 대화가 가능한 대원칙이 적용되는 공간)이거나 다른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가 가능하게 하는 여러 프로젝트와 연동되는 장소<아르스 카페2>(2014)가 되는데, 후자의 경우 단순한 협업이 아닌 일종의 고용 상태로서 맺어진 계약 관계에 가깝다.)

 

설치 그 자체로는 작가가 의도하는 관객의 다양한 참여 방식과 체험의 밀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그간 활동에 비해 이번 무대에는 채워지지 않는 시간이 느껴진다. <마스터 베이비>는 홍천 읍내의 경제 인구의 주요한 일군을 이루는 군인들을 주목하여 그들이 홀로 자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전시장 안에 만든다는 콘셉트인데, 이는 20일 가량의 전시 안에서 가시적으로 측정/집계되기 어려운 채 흩어져 버리는 감이 있는 것이다. 이는 관계 맺기가 아닌 군인 각자에게 개인의 자의식을 부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위=개인적/사적 공간이라는 등식은 전시=공적 공간이라는 전제와 양립 가능한가.

 

카모플라주 패턴은 그대로 유지한 채 국방색으로 불리는 초록색 계열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분홍색 계열의 구조물은, 분홍공장이라는 레지던스를 은유하는 작가의 농담이 섞인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폭력적인 집단의 상징성을 전복시키는 측면에서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안의 백색 공간, 칸막이를 친 개인의 단절된/독립된 공간은 개인의 시간을 일견 부여하는 듯하다. 하지만 젤과 휴지, 비닐봉지가 든 휴지통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내부에는 자위를 촉발시킬 어떤 물리적 매개체 역시 없는 데다, 무엇보다 일종의 공적 공간으로서 밝은 방이라는 작품의 형식적 틀이 군인을 지시하고 분리함으로써, 설치는 군인을 식별하고 소외시키며, 군인에게 안온한 자위의 체험 대신 자위로의 완전한 몰입이 불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더 적절해 보인다. 작가의 말을 따르자면, 이러한 설치는 개인적인 공간이 유일하게 없는 군대라는 장소를 우회하며 결국 비판적으로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군인들에게는 이 장소가 심리적인 부담을 주며 통과하거나 물리적인 수행을 통해 행복권을 달성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 기호가 뒤따를 것이다. 군인이 아닌 관객에게는 이 장소가 참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지표이거나 호기심을 부르는 관찰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변수를 고려할 수 있음에도 어떤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하겠다. 어쩌면 이 작품은 실제 조금 더 구체화된 매뉴얼들을 가진 채로 실제 군대에 설치되어야 비로소 완성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공적 공간 내에서 사적 자유가 부족한, 한편으로는 절실한 국내의 현실을 지시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설치가 실제 자위로 이어지기에는 힘들다고 해도, 관람객에게 어떤 체험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방에 들어가 조명을 켰을 때, 아무도 없는 방이 나를 맞아주는 느낌이 들고 곧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휩싸이게 된다. 동시에 바깥에서는 “ENGAGED”가 반짝이며 안에 누군가가 있음을 지시하고, 작가의 손을 석고로 뜬 손이 방향을 아래로 가리킨 채 움직인다. 살짝 모아 쥔 손은 안의 행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위를 외재화하는 셈인데, 안에서는 다시 기계손의 자위를 청취하는 셈이 된다. 곧 어떤 자극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자극은 시청각이 합치되는 바깥에서 또 다른 체험으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이 공간이 내외부적으로 닫힌 것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안민욱의 그간 퍼포먼스/설치 작업들은 관객을 주체로 삼으며 작가가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는, 매개되지 않는 관객을 가시화하며 작가의 위치를 연출자로서 포함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곧 이 작업은 일종의 특정 계층 혹은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공공적 성격의 작업으로 환원된다기보다는,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된 개인을 재위치시키며 자유가 절대적으로 없는 개성 없는 일자들의 집단과 분열증을 앓는 개인들의 편차가 만드는 불화의 공동체의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더 넓은 층위의 공공을 재조립/구성하는 위치 조정자로서 희미하게 작가가 존재한다.

 

최근 홈리스의 도시(2016)에서 선보였던, ‘집이 없는(Homeless)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집(Home)을 빼고 남겨진 뭐 없는(-less/without) 상태를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뭐 없는 것 네가지>(2016), 이번 작업의 흥미로운 참조점을 이룬다. 집의 순수 물리적 요소들, 곧 불투명함, 계단, , 밑을 각각 투명하게 아크릴로 마감하여 드러내며 원래의 용도와는 멀어지며 기괴한 공간이 되는데, 이로써 쓸모를 잃어버린 부유하는 공간의 단편들을 지닌, 어디에도 없는 집을 구성한다.

 

(Home)과 없음(Less)을 각각의 두 단어로 분리하고 결합한 결과는, ‘홈리스라는 사회학적이고 실제적인 이름이 아닌,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순수한 상태로 나타난다. 이를 결국 관객에게 집이 없음의 상태를 직면하게 하여 홈리스의 체험을 안기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일차적으로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부조리의 알레고리를 보여주고, 다음으로 통상의 사회학적 재현의 문제에서 벗어나며, 마지막으로 관객의 직접적인 체험만을 전시의 조건에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은 군대에서의 자위하기 힘든 조건을 가시화하는 가운데, 곧장 대안으로 이어지는 비판의 기조를 띠기보다는, 그 같은 사회적 현상 자체에서 체험의 조건을 도출하며 관객을 직접 향하는 이번 작업에서 거의 유사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일어날 수 있는(사실 일어나지 않은) 개별적인 자위행위들은 결국 개인의 프라이버시로 소급되어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취급되며 구체적인 기록들은 쓰레기통 안의 흔적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업은 자위 공간으로 기능하기보다, 자위를 하기 힘든 환경에서 사는 군인들의 열악한 지위, 나아가 자위라는 것을 은폐하는 문화를 비판적이기보다 우화적으로(‘자위의 불가능성을 실험하는 자위 공간’) 드러낸다. 그리고 미술관 안의 또 다른 안(‘폐쇄 공간’)을 만드는 가운데 개별자로 환원된 현대 미술관 속 관객의 지위를 검토하며 또 다른 부조리의 상황을 연출한다. 방에 있는 동시에 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바깥의 조명과 기계손이 작동됨으로써, 바깥의 사람에게 노출된다. 그리하여 순수한 개별자(관람객)의 지위는 깨지고 이들 간의 암묵적 관계가 형성된다.


김민관(아트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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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wook An has been producing performance pieces which often presuppose participation of spectators. It means that his practice is a kind of stage completed by final involvement of the viewers and their existence within exhibitions or installations triggers the time of the stage to flow. As part of ‘ars Project’, An has presented various attempts from <ars Cafe I> (2012) transforming an architecture into a performance venue by sharing conversation with visitors in an empty space temporarily converted into a cafe, to <arsbian Night> (2016) which shifted an exhibition space into a nightclub where the artist himself played a role of a waiter arranging spontaneous meetings between people who attended the event. ‘ars’ is an art company established in order to prevent artists’ unemployment. Its prototypical work, <ars Cafe I> (2012), has developed into either a stage encouraging viewers’ participation such as <ars English Art School> (2014) which provided a space allowing only speaking English or a space interconnected with different projects so as to support other artists’ performance. The latter’s appropriate example is <ars Cafe II> (2014) and this case is more similar to an employment agreement rather than a simple collaboration.

 

Having paid attention to soldiers who account for the large number of economic population of Hong-Cheon village, Minwook An constructed a private space for them to masturbate, <Master Baby> (2017). This installation has difficulty increasing frequency and density of the audience’s participation comparing to An’s previous works. It is obvious that the actual number of the activities of the people attended for approximately twenty days is not easily measured and aggregated. Thus, the work assigns a sense of identity to each soldier rather than forming relationship. In this context, a question emerges; is it possible that an equation, ‘masturbation=personal/private space’ is compatible with a premise, ‘exhibition=public space’?

 

Although the structure adopts the camouflage pattern, its color consists of pink tone spectrums complimented by green which immediately reminds of the military. This could be the artist’s joke to metaphorically refer to Pink Factory residency he attended in Hong-Cheon, however, this approach shows An’s attempt to subvert the symbolism of a violent organization. Its white and isolated/independent interior space blocked by partitions seems to suggest a glimpse of an individual’s time. Despite some prepared items such as a bottle of gel, toilet paper and a litter basket with a plastic bag, there is not a certain physical medium to lead masturbation inside the structure. Above all, the superficial frame of the work, ’bright room’, as a public space not only indicates and separates soldiers as a particular group, but also distinguishes and estranges them. It consequently performs a function disturbing the soldiers to have a moment of preoccupation instead of giving them a comfortable experience. According to An’s explanation, this installation conveys a critical point of view on the military place where only a personal area is not approved. 

 

For soldiers, this installation offers two possible choices: passing through the given space under a psychological pressure or achieving their right to pleasure through a physical behavior. For other visitors who are not soldiers, it is an indicator of impossibility or an object of observation evoking a sense of curiosity. In spite of these several variables, it is very difficult to attract voluntary and direct participation from spectators. For that reason, this work’s aim could be fully achieved when it is installed in territory of actual military camps with a more specified manual; or it could remain demonstrating an inadequate situation of internal system which lacks minimum privacy in shared community spaces.

 

Nevertheless, what we should not overlook is that this installation is not a futile attempt to give the viewers to have a certain experience even though it did not lead any actual masturbating actions. When one enters into the room and turns the light on, one could have a feeling that the empty room welcomes her or him and the motor sound surrounds the person. Simultaneously, the “ENGAGED” sign of its outside blinks to inform that the room is occupied and a plaster hand figure starts moving pointing at the below. The shape of the slightly loose grip externalizes the act of masturbation regardless of whether the action happens or not; also, the person in the space is able to listen to the machine hand’s masturbating sound. In other words, the installation clearly contains a stimulation point. The stimulation becomes a different experience at the exterior of the space where audio-visual aspects are intersected. As a result, the space is not entirely closed internally and externally.

 

Minwook An’s previous performances and installations take an audience as a subject and the artist himself does not completely disappear. The status of the artist is a director, included in the work, who underlines the existence of the audience who is not entirely engaged in the piece before the artist intervenes. In this regard, the work is not categorized in public art targeting a particular social hierarchy or profession groups. It rather relocates individuals repressed by collective consciousness; it also reveals a discordant community's gap between groups which consist of colorless dependent members and people of multiple personality. In this context, the subtle presence of the artist operates as a coordinator who reconstructs and reassembles diverse layers of the public.

 

At the exhibition, The City of Homeless in 2016, An presented a piece, <Four Things about -less> (2016) visualizing a state of ‘-less/without’ which eliminates a word, ‘Home’, from ‘Homeless’ in order to speak about ‘Homeless’ stories. He recreated actual physical elements of a house such as staircases, walls or floors and their opacity into transparent acrylic structures resulted in bizarre spaces unrelated to their original function. In other words, An built a sole house which embraces fragments of an useless floating space.

 

He separated the compound into two words, ‘Home’ and ‘Less’, to unveil an abstract and physical aspect of the word rather than focusing on its practical and sociologic tendency. If we perceive the work as an approach ultimately allowing the spectators to face and learn a situation of ‘Homeless’, it primarily shows an allegory of absurdity in social phenomena, secondly it escapes from a conventional sociological representation, and lastly, its essential condition is only a direct experience of the audience. The similar pattern occurs in the case of <Master Baby>; dealing with a deficient condition of the military’s present circumstances, An maintains an attitude which draws an experiential factor from social states of affairs and to have a direct influence on the viewers, instead of giving a critical viewpoint directly connected to proposing an alternative.

 

The individual’s masturbation which could have happened (did not happen in fact) is treated as a private and invisible realm. Records of its details are mere traces in a litter bin. Therefore, the work illustrates an insufficient situation for soldiers and allegorically reveals a closed culture suppressing an individual’s sexual activity (a masturbating space experimenting an impossibility of masturbating), rather than providing a space for masturbation. An creates a space inside of an exhibition space (a closed space) to scrutinize a status of spectators in a contemporary art museums reverted to a single autonomous existence and to create another situation of absurdity. I am in the room, but I am also exposed to the people at the outside of the room at the same time due to the operation of the machine hand and the light sign installed onto the exterior of the space for, paradoxically, a purpose of protecting the individual(=I)’s privacy. In the end, the position of an innocent singular person (a viewer) is collapsed and an implicit relationship between each of them appears.


Minkwan Kim(Art Scen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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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실천과 비예술적 조건

[안민욱 개인전] 2015.08.04~09.13 문화공장오산


안소연 | 미술비평가


안민욱은 일상에서의 예술적 실천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는 예술의 쓸모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회의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일상의 가치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던 예술의 오랜 태도는 수많은 현대의 예술가들로부터 계속해서 도전 받아왔다. 적어도 20세기 초 서구 아방가르드의 실천에서부터 1950~60년대 네오 아방가르드의 실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동시대미술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계속되는 사회적 관심 등을 고려해 볼 때 예술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눈에 띄게 좁혀졌다. 그러한 흐름에서 안민욱은 예술적 실천의 사회적 쓸모와 그것을 작동시키는 현실 사회의 비예술적 조건들에 대해 관찰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술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그것이 작동되는 현실의 사회적 조건이나 구조 등에 특히 관심을 가져왔다.

 

오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2015년 오산연고 작가 발굴에 선정되어 열린 이번 개인전은, 그가 영국 유학 후 자신의 거주지 오산으로 돌아와 그 지역 공간을 기반으로 모색해 온 작가로서의 활동을 소개한다. 신작을 포함한 총 5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는 그간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실천하고 경험했던 자신의 예술적 생산 활동과 그때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된 질문을 던진다. 그는 2008아르스(ars)”라는 이름의 예술 사무소를 기획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환경 조건에 개입하는 일련의 예술적 실천과 그 과정에 주목해 왔다. 전시된 작품 중 <A Dog and A Pram at Wimbledon>(2013)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면, 안민욱은 자신이 만든 성인용 유모차와 바퀴 달린 강아지 모형을 가지고 영국의 윔블던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일상에 개입한 그의 소소한 실천은 일상 속의 평범한 행위, 즉 유모차를 끌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거리를 산책하는 등 특별할 것 없는 일과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의 행위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는 임의의 도구들(instruments)”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그가 작가로서 이웃들의 일상에 개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자 매개가 된다. 그는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진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의 지점을 모색한다. 예술과 일상, 각각이 충돌하거나 어긋나 벌어진 틈에서 할 수 있는/해야 하는 일들을 작가는 상상한다. 이에 안민욱은 <A Dog and A Pram at Wimbledon>에서 개와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산책한 것이다. 그가 한 일이라곤 윔블던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걷기뿐이었지만, 그의 걷는 행위에 우리가 새삼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들어 끌고 다니는 특이한 물건들때문이다.

 

이처럼 안민욱은 일상의 어떤 장소 혹은 어떤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한다. 그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로 거대해진 현실의 풍경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되 기존의 가치 및 질서에 조금씩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어른을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와 얼굴에 아이패드를 장착한 모형 강아지가 그렇다. 그는 이웃들이 실천하고 있는 일상의 평범한 행위에 직접 가담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행위에 조금 낯선 방식으로 접근하여 보이지 않던 어떤 경계를 벌려놓는다. 신작 <. 아이. 와이 (D. I. Y)>(2015)<바우하우스(Bow House)-초롱이의 집>(2015)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작업 공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에 대해 스스로 반응하고 개입하면서 생산해낼 수 있는 일련의 결과물들에 초점을 맞췄다. 문화공장 오산 3층 전시실 중앙에 설치된 <. 아이. 와이>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이동식 선반이다. 벽면에 크게 출력해서 붙여놓은 그의 작업실 내부 사진을 배경으로 이동식 선반의 쓸모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사회적 필요와 합의를 거쳐 대량 생산된 물건이 아닌, 오로지 사적인 용도로 한 개인이 생산해낸 비합법적인 물건들의 정체를 규명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안민욱은 지금, 작업실 안에 있어야 할 그 이동식 선반을 전시장 한 가운데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것의 쓸모, 기능, 의미 등을 계속해서 되묻는다. <바우하우스-초롱이의 집>은 작가가 키우는 개의 집을 건축가 김영배와 협업하여 새롭게 제작한 프로젝트다. 그의 유머가 엿보이는 이 작품의 제목을 보면, 안민욱은 많은 부분 20세기 초 독일의 조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를 참조하고 있다. 당시 바우하우스가 전면에 내걸었던 실험적인 모토는 그 이름대로 집을 짓듯(Hausbau)” 예술의 기능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 혹은 그 접점에서 모색될 수 있었다. 어쩌면 안민욱은 한 때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예술의 생산 방식을 자신의 오산 작업실에서 재가동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안민욱은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이 크게 주목했던 예술의 수행적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플랜 비 스테이지 (Plan B Stage)>(2015)2014년 오산의 한 비영리 공간에서 무대 형식으로 설치했던 동명의 작업을 사진으로 찍어, 그것을 배경으로 새롭게 제작된 2015년 버전의 작업이다. 2014년 당시, 안민욱은 전시 공간의 천장 일부를 뜯어내 평상시에는 완전히 가려 있었던 공간을 일시적으로 공개했다. 천장 위로 그 아래만큼의 텅 빈 공간이 숨어 있을 줄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무대를 설치해놓고는 느닷없이 무대가 아닌 그 위로 시선을 옮겨 천장 너머의 쓸모없는 공간을 보라 했다. 그는 공기순환기를 이용해 아래의 공기를 위로 유입시켰고, 천장의 조명은 무대를 비추는 대신 일제히 천장 위 암흑의 텅 빈 공간을 향하게 했다. 결국 쓸모없이 버려진 공간을 조명한 무대는 건축적 설계의 효율성과 그 기능에 의해 쓸모가 박탈되었던 비장소의 현존을 환기시켰다. 따라서 안민욱은 단지 예술의 효용성과 기능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거다. 오히려 그는 현실의 비예술적 조건 내에서 어떻게 예술적 실천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 그러한 예술의 수행적 태도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어떠한 현실적 발언을 가능케 하는가 등의 사유를 이어갔다.

 

<어둠은 잠시, >(2015)에서 안민욱은 실제의 공간에 대한 또 다른 개입을 시도했다. 이 작업은 애초에 오산 종합운동장 인근의 지하도 공공미술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했던 일인데, 중도에 무산돼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는 과거의 계획을 수정해 문화공장오산 전시장에서 그것을 실현시켰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하 통로는 참 독특한 공간이다. 마치 동굴처럼 이중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오래된 지하도는 <플랜 비 스테이지>에서의 천장만큼이나 현실에서 우리의 시각 경험을 전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안민욱은 나무 구조물로 재연한 지하도를 전시장에 끌어들여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그 낯선 경험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그는 쉽게 자각할 수 없는 일상의 비예술적 환경과 조건들에 개입해 언뜻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익숙한 상황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때 그는 우리의 비/일상적인 경험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일련의 도구들을 제작함으로써 일상에서의 예술적 실천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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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Practices and Inartistic Conditions 

[Minwook An Solo Exhibition] August 4, 2015-September 13, 2015 Cultural Factory Osan

So-yeon Ahn | Art Critic

 

Minwook An thinks about artistic practices in daily life. His thoughts seem to have come from continuous introspection about artists' social roles and a skeptical mindset regarding the use of art. The long-standing approach in art of standing one step away from everyday values has faced continual challenges from many contemporary artists. Considering Western avant-garde practice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experiments of the neo-avant-garde of the 1950s to 1960s, and artists' growing social interest from postmodernism to contemporary art, the distance between art and reality has been significantly reduced. Under this trend, Minwook An observes the social use of artistic practices and current society’s inartistic conditions which carry out these practices. In other words, he has shown particular interest in the venues, social conditions and structures where art is produced and operated.

 

This time An's solo exhibition marks his appointment as a selected artist for the Exhibition for Finding Artists from Osan 2015, hosted by the Osan Cultural Foundation. Having returned to Osan, his hometown, after studying in Britain, he has continued his activities as a local artist, introducing works through the exhibition. Through a total of five works, including new ones, the artist keeps asking questions about the production of his own art, which he practiced and experienced in areas where he lived, and his identity as an artist. Since founding an art office he calls "ars" in 2008, he has carried out various projects and paid attention to a series of artistic practices and their procedures that intervene in environmental conditions. In the video work A Dog and A Pram at Wimbledon (2013), Minwook An strolls down streets in Wimbledon Britain with a pram designed to carry an adult and a wheeled dog that he produced. His small practices intervene in daily life by repeating ordinary activities that are not so special, like walking around streets with a stroller or a dog. However, when carrying them out, he arbitrarily uses instruments, which become important measures and means for the artist to be engaged in neighbors' everyday lives. He does not look for the answer of stale question of "what is art?" but examines the boundary areas instead. He imagines what he can/must do in the gap generated while art and daily life clash and crack. So the artist in A Dog and A Pram at Wimbledon walks a dog and pushes a stroller. What he does is just an ordinary-day walking in Wimbledon, but the walking draws our attention because of the unusual objects he made and carries.

 

An makes various instruments to intervene in certain places or circumstances in daily life. He gains ideas for artwork through real life landscape that have become bloated due to many social factors, and actively engages in such situations and generates small differences in conventional values and orders. A stroller for an adult and a dog with iPad head are the examples. He takes part in the same routines as his neighbors, but at the same time extends invisible gaps between him and others using unfamiliar approaches. The newly made D.I.Y. and Bow House-Cholong's House (2015) are similar: he focused on chains of results generated from his response to and interference with the varied environments and conditions surrounding his workspace. D.I.Y., installed at the center of an exhibit hall on the third floor of Culture Factory Osan, is a movable rack An made to use in his studio. The big photo of his studio is attached on the wall and helps us guess how the rack is used. Unlike mass-produced objects made through societal needs and consent, objects manufactured by an individual for personal use hardly allow people to deduce what they are for. Moreover, by putting the rack that should have been in his studio at the center of the hall, the artist continues questioning its use, functions and meanings. Bow House-Cholong's House, a collaboration with architect Young-B Kim, is a new project to build his doghouse. The title, a reference to Bauhaus, an art school in Germany in the early 20th century, also reflects his sense of humor. As the name hausbau (building a house) suggests, the experimental art school focused intently on the functionality of art, and it was found at the boundaries or borders between art and technology. Perhaps Minwook An tries to re-employ the production method Bauhaus pursued at his Osan studio.

 

Additionally, An is also interested in the performative value of art, which has received huge attention from the modern art world since the 1960s. Plan B Stage (2015) is the 2015 version of his old work of the same name, which was set as a stage at a nonprofit space in Osan in 2014. It is now newly created with the picture of the previous work as a background. In 2014, An removed parts of the ceiling of the exhibition area and temporarily exposed the space that had been usually hidden completely from sight. No one normally recognized that there was an empty space above the ceiling as large as the space below. However, the artist, all of a sudden, asked visitors to turn their eyes to the useless space above the ceiling instead of to the stage he set on the floor. He sent the air from the outside to the top by using an air circulator and faced all the lights towards the empty dark space above the ceiling instead of the stage underneath. Ultimately, the work that lighted the useless abandoned space called people’s attention to the efficiency of architectural design and the existence of the “non-space,” which was functionally stripped of use. As it is, An did not just want to talk about the utility and functionality of art. Instead, he continued asking questions, such as how to promote artistic practices more actively in an inartistic environment or what realistic expression is possible in our society with this type of performative attitude in art.

 

With For A While, The Way into Darkness (2015), An once again tries to intervene in real space. This work was first designed as part of a public art project for underground passages near the Osan Sports Complex but it could not be completed as the project was cancelled midway through. An made some changes in design while preparing this exhibition and displayed it at Culture Factory Osan. Underground passages are unique spaces one needs to pass through to move from one place to another. The old underground passage, which also feels like a cave, subverts our visionary experience in reality, just like the ceiling of Plan B Stage. An makes us immerse ourselves in the out-of-the-ordinary experience of reality by setting the underground passage with wood in the exhibition room. He approaches familiar environments that do not feel special at first by intervening in inartistic environments and conditions we do not really recognize. He pursues the realization of art in everyday life by producing a series of tools that enable the maximization of our ordinary or unordinary experience.

 

Posted by ars2008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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